어느 화창한 초여름 날, 대안공간 패러그린프로그램(PEREGRINEPROGRAM)을 운영하는 애드문드 키아(Edmund Chia)와 이야기를 나눴다. 패러그린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직접 전시회를 열며 자유롭게 운영하는 ‘아티스트-런-스페이스(artist-run-space)’이다. 이곳에서 열린 전시 <천국을 보았니: 스펙트라(Did You See Heaven?: SPECTRA)>(2012. 5. 6~6. 10)에 대한 리뷰를 마지막으로 시카고 특파원으로서의 지난 1년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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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그린프로그램이 입주한 스튜디오 콤플렉스

버려진 공장들이 밀집한 이스트 가필드 파크(East Garfield Park) 지역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 지역에 작가들이 하나 둘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터줏대감격인 전시 공간 율리우스 시저(JULIUS CÆSAR)와 지난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뉴 캐피털(New Capital), 데브닝 프로젝트+에디션(devening projects+editions) 그리고 에드문드의 페러그린프로그램을 비롯한 여러 전시 공간들이 함께 성행하며 시카고 아트씬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패러그린프로그램의 디렉터인 에드문드 키아의 본업은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하는 작가다. 시카고 이스트 가필드 파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커튼을 경계로 작품을 만드는 공간과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공간인 패러그린프로그램이 공존한다. 이 작업실은 스튜디오 콤플렉스에 위치한 집적 효과 덕분에 입주 작가들이 오며 가며 전시에 관한 대화를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에드문드에게 큐레이팅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참 많잖아요. 혼자서 모두를 탐색하기에는 역부족이에요. 그래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을 지지하자는 생각에서 전시 기획에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에드문드는 이러한 ‘아이디어 공유’에 대한 열망을 지인들이 모인 서클에서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패러그린프로그램의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절반 정도가 그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에드문드와 같은 ‘작가-큐레이터’ 캐릭터는 미술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큐레이팅이 독립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기 이전, 많은 작가들은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과정을 작업의 일부로 여겼다. 당시의 이러한 태도는 특히 젊은 작가들의 시대를 앞서 가는 작업을 소개하는 데에 중요한 경로를 제공했다. 20세기 초 파리의 살롱도톤느(Salon d'Automne), 1972년 문을 연 뉴욕의 아티스트스페이스(Artists Space)와 같은 전시 공간이나 1988년 데미안 허스트가 런던에서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 등이 그 예이다. 최근 많은 작가들은 하나 이상의 직함을 겸하는 것이 마치 유행을 앞서 가는 것처럼 여기며 평론, 큐레이팅, 미술 교육, 갤러리스트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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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보았니: 스펙트라(Did You See Heaven?: SPECTRA)> 전시 전경

<천국을 보았니: 스펙트라(Did You See Heaven?: SPECTRA)>전은 에드문드의 주도 아래 ‘천국’과 ‘추상’이라는 전시의 테마를 정했으며, 패러그린프로그램에서 열린 역대의 전시 중 가장 많은 작가가 참여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그에게 큐레이터로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계기였다. 미술의 오랜 조형 요소인 추상 언어를 통해 천국 그리고 천국과 연계되는 숭고함 또는 낙원의 이미지를 탐색한다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다소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이러한 무게감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보다 가볍게 풀어 낸다.
특히 이번 전시는 큐레이팅과 작업 사이의 크로스오버적 가능성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배치는 연대기 순으로 작품 간의 시각적인 조화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례를 고려할 때 이번 전시에서 작품 배치에 대한 에드문드의 설명은 흥미롭다. "작가 잭(Jack)의 긴 판넬 작업에서는 붉은색 그라데이션이 바깥 쪽으로 퍼져 나오기 때문에 붉은 화살표가 있는 리(Li)의 작업을 옆에 배치해 그에 응답하게 했어요." 그의 설명은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점과 선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미셸(Michelle)의 원형 판넬 작업은 천장 가까이에 놨어요. 태양처럼요.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단색화가 그려진 캔버스들은 살짝 오른쪽으로 기운 일직선으로 걸었어요. 수평선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에드문드의 큐레이팅은 마치 작품들을 붓과 물감 삼아 천국에 존재할 법한 풍경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국을 보았니>전은 그가 큐레이터로서 준비한 쇼이자 작가로서 만든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업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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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보았니: 스펙트라(Did You See Heaven?: SPECTRA)> 전시 전경

2012/08/13 18:11 2012/08/13 18:11
Posted by 유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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